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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포천군 소흘읍 직동리 51의 7 국립수목원. 흔히들 ‘광릉수목원’이라 부르는 이곳에서는 나무 하나, 풀 하나, 돌 하나에서 5월의 싱그러움을 느낄 수 있다. 주중이면 수목원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쳐난다. 1997년 숲을 보호하기 위해 주말과 공휴일 입장을 제한하고 5일전 예약제를 도입해 1일 입장객을 5,000명 이하로 한정했다. 이때부터 수목원을 찾는 이들은 유치원등의 단체 관람객이 대부분이다.
수목원 중심부에 위치한 산림박물관은 지난 87년 문을 열었다. 1층 제1전시실에선 느티나무 상징목이 눈길을 끌었다. 안동 임하댐 수몰예정지구에서 가져다 놓은 것으로 둘레가 6.2ｍ에 달한다. 5개의 나무가 합쳐져 하나의 나무로 성장하는 바람에 특이한 모양이 됐다.
박물관을 빠져 나와 미개방지역인 외국수목원으로 향했다. 구주소나무, 독일가문비나무, 서양측백, 화백, 베루코사자작나무…. 일본 원산인 화백은 목재가 음향조절력을 지녀 음악당 내장재로 쓴다. 나무모양이 피라미드형인 서양측백은 조경수로 많이 심는다.
식용식물원에는 비름, 더덕, 다래, 고들빼기 같이 식탁에서 친근하게 마주할 수 있는 풀이 자란다. 명아주, 잔대, 돌나물, 방아풀 등등 먹을 수 있는 식물이 이렇게 많구나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산마늘은 강원도 아낙이 서방에게도 꼭꼭 숨겨놓았다가 샛서방에게만 먹인다는 속설이 전하는 강장식품이다. 식용식물원과 나란히 위치한 약용식물원에서는 식물 이름을 음미하는 재미가 있다. 꿩의 다리, 범의 꼬리, 놋젓가락나물, 앉은부채, 족도리풀 등.
전시림 사이로 나있는 임도를 따라가면 양옆으로 각양각색의 나무가 키자랑하듯 하늘을 찌른다. 자작나무는 고산성 북방식물로 껍질이 하얗다. 목재는 견고하고 뒤틀림이 적어 예로부터 목판활자 조각용으로 썼다.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에도 자작나무가 쓰였다.
곳곳에 산재한 ‘참나무 6형제’를 구별하는 것도 숲속을 걷는 재미다. 신갈나무, 갈참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는 모두 도토리를 생산한다. 통상 ‘참나무’나 ‘도토리나무’라고 부르는 나무는 숲에 없다.
생강나무는, 틀린 이름이 일반에 고착된 참나무와 약간 다른 사례에 속한다. 물이 오른 여린 가지를 조금 잘라 비볐을 때 생강냄새가 난다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강원도에서는 같은 나무를 두고 ‘동백나무’ ‘올동백’이라고 한다. 정선아리랑 ‘강 건너 올동백이 다 떨어지니 강 건너달라’는 가사의 올동백이 생강나무다. 외지인이 강원도 사람을 만나 생강나무라고 우기면 면박당하기 십상이다.
전시림 사이를 휘적휘적 걷다 보면 세 갈래 길이 나온다. 그대로 올라가면 해발 537ｍ 소리봉에 다다른다. 발길을 돌려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육림호를 거쳐 수목원 입구로 이어진다. 가운데 길로 조금 들어가면 전망대가 있다. 간벌한 나무를 활용해 만들었다. 전망대 꼭대기에 서면 사방이 확 트인다. 소리봉과 물푸레봉(478ｍ)을 휘둘러 광릉 일대 숲이 한눈에 들어온다. 온통 녹색이고 싱그러움이다.
소리봉 쪽으로는 한국에서 유일한 500여년 역사의 자연보존림이 펼쳐진다. 광릉숲은 1468년 능림으로 지정돼 그동안 보존됐다. 광릉은 세조의 능이다. 이곳은 당초 신숙주가 봐둔 명당자리였으나 세조가 빼앗았다. 이후 광릉 숲은 조선조 내내 능림으로 보호받았다. 훼손하면 능지처참당했다. 6·25전쟁의 전화까지 피했으니 명당은 명당이었던 모양이다.
500년이 훨씬 넘는 세월을 나무끼리 살았다. 인간의 개입을 배제한 덕에 이곳은 생태계의 보고가 됐다. 수목원 생물표본과 이유미 박사는 “500여년 세월을 자연스럽게 흐르면 식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과서”라고 평가했다.
광릉 숲 전체 면적은 수목원 1,157ha를 포함해 2,240ha다. 남산을 세 개 합쳐 놓은 넓이다. 식물 2,983종, 동물 2,881종이 어울려 살아간다. 세계적인 희귀종이자 멸종 위기종인 크낙새, 하늘다람쥐, 장수하늘소, 원앙새 등 20여종의 천연기념물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크낙새는 90년 이후 목격되지 않았다.
우리 산을 상징하는 식물은 진달래와 소나무다. 두 종은 척박한 토양에서 잘 자란다. 토양이 조금 더 비옥해지면 다른 나무가 성장한다. ‘붉은 산’에서 이제 소나무는 밀려나고 있다. 세월의 흐름에 따른 나무세계 패권의 변화를 ‘천이(遷移)’라고 부른다. 광릉 숲은 6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보존돼 천이의 최종 단계에 근접해 있다. 수목원 식물조사과 권영한 박사는 “천이의 극상에 가까울 때 나타나는 서어나무와 신갈나무 군락을 자주 목격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간이 나무를 함부로 대하면 나무 또한 인간을 버렸다. 나무세상으로 남은 광릉 숲은 이제 인간과 나무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광릉숲에 들어선 국립수목원은 인간과 나무가 평화롭게 상생하고 호혜할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광릉숲 길잡이
세조의 능림인 광릉숲은 1913년 일제가 임업시험림으로 지정하면서 산림생태와 임업연구의 산실로 첫발을 내딛었다.
지난 83년부터 87년까지 수목원을 조성해 87년 4월 공개했다. 89년 산림욕장 개장, 91년 야생동물원을 열었으나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리면서 숲을 보전하기 위해 폐쇄했다. 동시에 공개지역도 주말과 공휴일 관람을 제한하고 5일전 예약제를 실시하고 있다.
99년엔 현재의 국립수목원으로 변모했다. 국립수목원 김형광 원장은 “단순 위락시설에 머물기보다는 산림자원 연구와 임업 발전을 위한 전문연구시설로 거듭나고 국민자연학습장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는 산림식물의 조사·수집·증식·보존, 산림생물표본의 수집·분류·제작·수장, 국내외 수목원 간 교류 및 유용식물의 확보, 대국민 산림교육, 광릉숲 보존 등이다. 고산식물원 시각장애인식물원 등 전문수목원 15개, 황벽나무 등 유용수종 54종의 전시림 50ha가 있다.
▲숲생태 관찰로=숲을 있는 그대로 더 가깝게 접할 수 있도록 만든 현장학습장. 야생 초류와 목본류를 걸어가면서 관찰할 수 있다. 지정한 통로에서만 이동해야 한다. 길이 462ｍ.
▲온실=동백 팔손이 가시나무 등 총 320종을 볼 수 있는 난대식물원. 광릉 숲에서 자연상태로 월동이 불가능한 식물을 키우고 있다. 전시 외에 희귀·멸종위기 식물 증식실험도 진행중이다. 면적 1,610㎡.
▲육림호=산속의 작은 호수로 울창한 숲과 맑은 물이 어울려 아름다운 경관을 이룬다. 주위에 산책로가 있어 경치를 감상하며 쉴 수 있다.
▲산림박물관=2층 건물로 연면적 4,617㎡. 학술표본실, 사료실, 특별전시실, 시청각실 등이 있다. 전시된 산림자료는 1만3천여종 3만5천여점이다. 산림자원과 기술, 산림과 인간, 세계의 임업, 한국의 임업, 한국의 자연 등 5개 주제별로 상설 전시되고 그때그때 특별전시회가 열린다.
▲야생동물원=백두산호랑이, 반달가슴곰, 고라니, 너구리, 독수리, 수리부엉이 등 16종. 야생동물 멸종을 막기 위해 생태연구 및 증식법을 연구하고 있다. 백두산호랑이는 94년 김영삼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장쩌민(江澤民) 주석으로부터 선물받았다. 비공개.
<발췌 : 경향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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