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미국, 기차의 의자와 난간마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청년들로 붐비고 남북전쟁의 종전으로 갈 곳 없어진 제대 군인들은 석유를 채취하는 일을 하기 위해 유정(油井)으로 모여들었다. 루이스 헨리 세브란스도 그 중 하나였다. 세브란스는 세계 최대의 석유재벌 록펠러의 죽마고우이자 동업자이기도 했다.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브랜드의 거부(巨富)였던 그는 석유왕 록펠러와 함께 세계 최초로 석유채취에 성공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1870년 1월에 설립된 스텐다드 석유회사(Standard Oil Company)의 대주주였다. 하지만 이 둘의 모습은 조금 달랐다. 같은 대주주였던 록펠러가 뉴욕 한 복판에 록펠러 센터를 세우고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데 비해 세브란스의 이름은 미국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물론 그 둘은 자신의 재산을 이웃에게 나눠주는 데에 열심이었다는 점에선 같았다. 당시 자국뿐 아니라 해외에까지 기부한 몇 안 되는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록펠러의 해외기부 상당부분이 중국의 석유자원 확보를 목적으로 한 것에 반해 세브란스의 시선은 어느 것 하나 얻을 수 없는 조선을 향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스러져 가는 조선과 이역만리 미국의 독지가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1904년. 조선 최초의 근대식 병원이 세워진다. 기증자의 이름을 딴 ‘세브란스병원’ 이다. 게다가 세브란스 집안의 기부는 자신의 대에서 끝나지 않았고 그의 아들과 딸 역시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세브란스병원에 거액을 기부했다. 세브란스 가문이 만든 ‘세브란스 기금’은 10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계속 후원금을 병원에 보내고 있다고 한다. 이 아름다운 기부는 오늘날 대한민국을 의료기술 강국으로 우뚝 서게 한 씨앗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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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는 이미 죽고 세상에 없다. 심지어 그의 자손들마저 후손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이처럼 무덤 앞에 찾아와 줄 이 하나 없는 이미 절손된 세브란스 가문의 기부가 100년이 넘게 지속될 수 있는 그만의 기부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그는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때문에 세브란스 본인은 자신 명의의 집 한 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났지만, 건물이 필요한 곳에 수많은 건물을 기부했다. 또한 그는 회계사 출신답게 기부를 받는 모든 곳에 그의 기부금 일부로 펀드를 조성 ? 운용하도록 했으며, 본인이 관심 있는 분야(예술, 교육, 의료 등)에 기부해왔다. 이것이 세브란스의 기부가 그가 세상에 없는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비책이다. 그리고 세브란스가 실천한 이 모든 기부의 저변에는 ‘사람을 향한 따뜻한 마음과 온기’가 깊은 철학으로 존재한다.

출처: www.ebs.co.kr